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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02년 07월 23일 (화) 12:07
신용카드에 사인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회사원 김재훈씨(29)는 매달 50만원 정도를 신제품 구입에 쏟아 붓는다．최근에는 디지털 카메라와 PDA 등을 모두 새 것으로 바꿨다．가정용 비디오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2를 구입한 것도 바로 올 봄의 일．결혼자금마저 바닥나 결혼도 미뤘다．
김씨같은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족’이 늘고 있다．얼리어답터족이란 멀쩡한 제품이 있는데도 “신제품이라면 일단 사고 본다”는 ‘원칙’에 충실한 소비자층. 일단 마음에 드는 성능과 디자인을 가진 제품이 나오면 먼저 사서 써봐야만 직성이 풀린다. 과시욕과 호기심이 뒤섞인 이들의 구매행위는 제품 성능테스트와 이에 대한 의견을 올리는 ‘사용후기’ 작성까지 이어진다．
오장동씨(28)는 대표적 사이트 ‘얼리어답터’(earlyadopter.co.kr)에서 공동구매를 통해 밀봉되어 있는 어항인 ‘Eco-sphere’를 구매했다．오씨는 “작은 새우 3마리가 밀봉된 어항 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도대체 밥도 주지 않는데 10년 이상 살아간다니 말도 안된다”며 신기해 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언뜻 공상과학 SF영화에 나오는 헬멧을 연상시키는 개인 휴대용 냉방장치인 ‘쿨링 시스템’ 등 다양한 제품이 선보이고 있다. 이 쿨링 시스템은 서늘해 보이는 은빛 플라스틱 몸체와 검은 천으로 덮인 기괴한 모습으로 기화열을 이용해 몸의 온도를 빼앗는다．말하는 앨범은 애정어린 말 한마디와 함께 볼 수 있는 전자앨범. 딱정벌레 자동차 모양의 비틀 PC도 얼리어답터족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같은 얼리어답터의 소비행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빨라진 제품수명주기에 구매욕을 자극받은 물질주의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할부금을 채 갚기도 전에 바로 새 제품을 구입하는 행태가 정상일 수 없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그러나 얼리어답터족은 ‘명품족’을 대체하는 하나의 강력한 ‘신흥 소비층’으로 떠오른 상태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사용 후기를 올려 수많은 네티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며 사이버 공간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성능은 물론,재질까지 꼼꼼히 따지는 이들의 영향력은 제조회사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정도다．
얼리어답터 2년차라는 김인철씨(31·회사원)는 “술·담배를 줄여가며 아낀 돈으로 나름대로의 취미생활을 하는 것으로 봐달라”고 요구했다．그는 “얼리어답터가 된 후로는 즐겨하던 당구까지 끊었다”며 “어렵사리 마련한 신제품의 포장을 뜯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이에 대해 “정신적 지주와 인간의 따뜻한 정을 상실한 시대에 사람들은 자칫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리어답터족과 동일한 소비패턴을 지니게 된다”면서 “사용후기를 적는 등 객관적 잣대로 소비행위를 하는 긍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얼리어답터란] Early + Adopter 신제품마니아 지칭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란 Early와 Adopter의 합성어다．남들보다 빨리 새로운 제품을 구입해 이를 써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저스의 논문 ‘기술의 보급’(Diffusion of Innovation,1995)에서 처음 언급됐다．어느 특정 분야가 아니라 디지털 문화를 대표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지식’을 기반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마니아나 오타쿠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보보스에 가까운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디지털 마니아’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오상도 car@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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